시작하며
일본인 친구와 역사와 이야기를 하다가 깜짝 놀라는 일이 많다. 이 친구만 역사에 대한 인식이 그런 줄 알고 가끔 가벼운 자리에서 다른 일본사람들에게도 가끔 흘리듯 물어본다. 특히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면, 전쟁 가해자로서의 인식보다는 피해자로서의 인식을 강하게 가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나는 깜짝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는 일본의 역사 교육, 사회적 분위기, 정치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현 일본인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 서는 일본의 전후 역사 인식 형성과 교육, 미디어의 역할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전쟁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서의 인식을 가지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사회적·정치적 배경이 있다고 나름 생각한다 .
일본의 전쟁 피해자 의식과 그 근거
나름 내가 가진 작은 지식으로 생각해 본다 일본이 전쟁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가 일본 사회에서 전쟁의 핵심적인 경험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은 전쟁을 시작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 그 과정에서 본토 공습과 원자폭탄 투하라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고, 특히 원자폭탄 피해는 대량의 민간인 사망을 초래하면서 일본인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또한 일본이 전후 미국의 강한 영향 아래 들어가면서, 전쟁 책임에 대한 교육보다는 전쟁 피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역사 인식이 형성되고 교육되지 않았을까, 이는 일본 정부가 자국민에게 전쟁을 일으킨 이유와 과정보다는, 전쟁으로 인해 일본이 입은 피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교육과 미디어를 운영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일본의 피해자 인식과 교육 배경
중고 서점에서 구입한 책을 가볍게 읽어 보았다. 일본의 역사 교육에서 전쟁을 다루는 방식은 시기별로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일본도 전쟁의 피해자였다"는 논조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일본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전쟁을 다루는 방식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지 않았나 정리해 본다.
- 원자폭탄 피해 중심 서술
-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상을 상세히 기술하며, 방사능 피해로 인해 고통받은 시민들의 이야기를 강조함.
- 전쟁의 책임 문제보다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흐름.
- 전쟁의 원인과 전개에 대한 모호한 설명
- 일본이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거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식의 서술.
- 일본이 아시아 지역에서 식민 지배와 침략을 했다는 사실은 축소되거나 애매하게 서술됨.
- 미국과의 관계 강조
- 전후 일본이 미국과 협력하며 평화국가로 성장했다는 점을 강조.
- 원자폭탄 투하를 "비극적인 사건"으로 묘사하지만, 미국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분위기.
이러한 교육 방식은 일본 국민들이 "우리는 전쟁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 중 하나"라는 인식을 갖도록 유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전쟁을 일으킨 책임보다는 전쟁을 통해 입은 피해가 강조됨으로써,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경제 성장과 역사 교육의 변화
전후 일본은 엄청 힘든 시기를 지내면서 동경 폭격으로 패허가된 도시의 재건 빈곤으로의 탈출을 위해 앞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쇼와시대라는 언어를 만들어 낼정도로 일만 하는 일본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러한 흐름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전쟁보다는 경제 발전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일본 정부는 전쟁에 대한 교육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고, 점차 전쟁 범죄나 책임 문제보다는 원폭 피해와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하게 되었다 생각한다.
보수 정치 세력의 영향
이런 전쟁 빈곤에서의 탈출, 경제 우선 정책의 흐름이 일본 내 보수 정치인들은 전쟁 범죄에 대한 논의를 피하려 했고, 대신 일본의 피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일본의 보수 정권들은 교과서에서 전쟁 책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검정을 강화했고, 이는 일본 국민들이 전쟁의 책임보다는 피해를 더 강조하는 역사관을 가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전쟁 피해를 강조하는 미디어와 문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일본 방송매체 일본의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에서도 원폭 피해를 강조하는 작품이 많이 등장한다. 최근의 예를 들면, 유명한 애니메이션 영화 <반딧불의 묘>는 전쟁 중 일본 민간인들이 겪은 비극을 다루고 있으며, 전쟁의 참상을 강조하지만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책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은 일본인들이 전쟁을 "자신들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으로만 인식하도록 만드는 데 영향을 주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결론
일본이 전쟁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게 된 이유는 전후 미국의 점령 정책, 보수 정권의 역사 교육, 경제 우선 정책으로 이룬 경제 성장이 강조됨으로써 생각지 못한 역사 인식의 변화, 그리고 미디어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일본 정부는 전쟁 책임보다는 원폭 피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왔으며, 그 결과 일본 국민들은 자신들을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로 이어졌으며, 일본 내에서 전쟁 책임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상태로 남아 있는 이유가 돼있다. 일본이 진정한 평화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원폭 피해뿐만 아니라, 전쟁 가해국으로서의 책임에 대해서도 성찰하고,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